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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그 평범하고 오매불망한 무과 급제

고포릿 2008. 11. 27. 15:49

정조 시대, 일제시대 그리고 박정희 정권하에서 이순신은 軍神의 반열에 올라선다.

충무공 사후 200년이 지나 정조시대 이충무공전서(1795)가 편찬되고, 일제 식민시대의 민초의 아품 달래고, 힘과 용기를 결집시키기 위해 단채신채호의 성웅 이순신 등이 발간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성웅 이순신 정신을 남기고자 63년 현충사의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떤 의도, 목적을 넘어서 충무공 이순신의 신하로서의 충정, 장군으로서의 통솔 그리고 승리를 만들어 내고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능력이야 말고 세기를 넘어 닮도록 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를 초래하더니 결국 실물 경제의 침체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고 일본도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 우리 수출부국의 힘은 미국 / 유럽의 경제가 살아나야 성장하는 구조이다 보니, 청년실업 문제는 세대를 건너 유전될 지경 같다. 이순신 당시의 젊은이들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이순신이 무과에 뛰어 든것은

 

  • 22세 무과에 뜻을 두고
  • 28세 무과 도전, 낙방
  • 32세 무과 병과에 합격 ( 1~3등 갑과, 4~8등 을과, 9~28등 병과, 이순신은 전체 12등, 평균나이 34세)

 

10년을 취직 시험에 매달려 공무원에 등용된 것이다. 이순신 보다 나이 많은 합격자가 17명이나 있다고 하니 재수, 삼수를 해서 취업전선에 매달린 사람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임용되었다고 좋은 것은 아닐것이다, 이순신 또한 12년간 미괄말직에 승진, 파직 그리고 재임용을 거치며 종사를 하게 된다.

 

종9품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종4품 발포 만호, 암행어사 경차관의 그릇된 보고로 파직

종8품 훈련원 봉사에 재임용

종4품 조산보 만호, 오랑캐 두목 체포해 공을 세우지만 병마절도사 이일의 무고로 파직, 백의종군

종7품 전라순찰사 군관에 복직

종6품 정읍현감

1591, 정3품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하는 기회을 얻음, 서애 유성룡의 천거

 

이런 12년간의 등용문 생활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준비했을까?

관료를 원망하고, 임금을 원망하고, 자신을 비관했다면 역사에 기록도 안되는 민초같이 살아 갔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 직종인 군관으로서, 주어진 여건을 슬기롭게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